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문단 편집) == 기타 == ||[youtube(5CyvMc1jRMQ)] || || '''마시아스 응게마의 연설 녹음''' || * 집권 초기에 녹음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연설 녹음이 [[유튜브]]에 풀 버전으로 올라와 있는데, [[서사하라]] 지역 주민들의 자결권을 지지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응게마의 육성 자료가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 상술한 만행들에도 불구하고 웬일인지 생전에는 동시기의 독재자들인 [[이디 아민]]과 [[장 베델 보카사]]처럼 세계 신문에 오르내리지 않았으며, 그 영향으로 지금도 응게마는 만행의 질과 비교하면 신기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다.[*구글검색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검색 결과 약 715개, 'Francisco Macías Nguema' 약 11만 3천 개, '마시아스 응게마' 1630개, 'Macías Nguema' 22만 1천 개, '적도 기니 초대 대통령' 약 2만 6천 3백 개, 'first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Equatorial Guinea' 약 1970만 개, '응게마' 약 1만 9백 개, 'Nguema' 약 173만 개. 단 '응게마(Nguema)'는 2대 대통령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에 대한 검색 결과도 포함되었다.][* [[TheTopTens]]에서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순위 Top 10에서 히틀러(2위), 스탈린(3위), 마오쩌둥(4위), 폴 포트(5위), 김정일(7위), 이디 아민(8위)은 물론 [[사담 후세인]](9위)도 이름을 올렸으나, 마시아스 응게마는 고작 '''95위'''에 머물러 있다. 참고로 10위는 [[칼리굴라]], 6위는 [[블라드 3세]]이며, 1위는 뜬금없이도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다.(...) 중국사의 폭군들은 Top 10은 커녕 Top 100 안에도 [[진시황]](90위) 1명 외에는 오르지 못했는데, 이는 TheTopTens가 서양권 사이트이기에 서양권의 폭군들이 더 익숙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https://www.thetoptens.com/leaders/worst-dictators/|#]]] 사실 이는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부가 마시아스와 밀착 관계를 맺어 언론이 적도 기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범죄라 규정했고, 제2세계의 정부들은 응게마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인권 탄압을 무시했던 데다가, 유엔 산하 여러 기관들을 위시한 여러 국제기구는 적도 기니의 비극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이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미국조차 적도 기니의 인권 탄압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등 적도 기니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그 비극을 알면서도 덮어줬던 것에 기인한다. 이렇듯 11년 동안 어떤 국가 정부나 국제 기구도 적도 기니의 참상에 대해 몇몇 비판 성명을 발표하는 것 외에는 탄압을 중단하기 위해 중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국제 전선에서 고군분투가 벌어졌지만 우울한 지연으로 인해 인권 기록이 나치가 유럽을 점령한 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쁜 정권이 11년 동안 방해받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다. '''구속받지 않는 공포, 국제적 무관심, 절망이 마시아스 (응게마) 휘하의 적도 기니의 특징이었다.'''"라고 표헌하기도 했다. [[http://www.opensourceguinea.org/2013/10/ranfall-fegley-u-n-human-rights.html|#]] 물론 응게마의 몰락 후에 적도 기니에 간 국제 기구는 적도 기니가 '현대 국가보다 [[아포칼립스]] 영화에 가깝게 보일 정도다'는 것을 깨닫고는 경악하여 응게마를 규탄하게 되었다. * 주술을 신봉하여 홀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반복해서 말하고 팡족의 전통에 따라 참수된 머리 모음을 숭배하며 이것이 그에게 힘을 주기를 바랐으며, 귀신들과 긴 대화를 나누기 위해 빈 방에 8인용 식탁을 차려놓은 뒤 혼자 앉아 있기도 했다. *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해서 나치 독일의 정책에서 학정의 많은 요소를 차용한 것은 물론 [[나의 투쟁(자서전)|나의 투쟁]]의 보존 상태가 좋은 사본을 보유하며 이를 5번이나 정독하고 몇몇 구절은 암송까지 했다고 한다. 심지어 응게마는 본인을 '마르크스-히틀러주의자'로 자칭하며[* 다만 응게마는 "나는 자본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유럽 이론이고 나는 유럽인이 아니라 아프리카인이다."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네오 나치|나는 히틀러를 아프리카의 구세주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했지만 그의 목적은 전세계의 식민주의를 종식시키는 것이었고 그의 유럽 정복은 단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 '혼란스러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불명. 말이 너무 난잡한지라 제대로 된 해석이 힘들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1967년에 [[마드리드]]에서 열린 적도 기니의 독립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의 총회에서 남기며 대놓고 히틀러를 찬미했다.[* 당연히 이에 대해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응게마의 주장이 '일관성이 없다'며 부정적으로 봤다.] 그리고 응게마는 자신을 '반시오니스트'로 선언하기도 했다. * 한국에서는 딸 모니카가 북한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심지어 마시아스 응게마에 대해 다루는 자료조차 조카 테오도로 오비앙에 대해 다룬 자료에서 '조카에게 배신당하고 살해당한 비운의 대통령'이라는 식으로 언급된 자료가 대부분이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joosungha/seoullife-09202013102153.html|예시]] 이 기사는 [[탈북자]] 출신 기자인 [[주성하]]가 2013년에 오비앙이 국제김정일상을 수여받았을 때 쓴 오비앙을 비판하는 기사이며, 더욱이 주성하는 마시아스 응게마를 테오도로 오비앙의 사촌형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해외에서는 [[우간다]]의 [[이디 아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장 베델 보카사]]와 함께[* 국내에서도 이 셋을 소개한 저서인 류광철의 '살아 있는 공포 아프리카의 폭군들'이 2019년 출판되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71053683|#]] 이 저서에서는 위 셋과 함께 [[모부투 세세 세코]], [[로버트 무가베]], [[오마르 알 바시르]]에 대해서도 간략히 다루었다.] 1970년대에 [[아프리카]]에서 집권하던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자주 언급된다. [[https://ng.opera.news/ng/en/politics/1c2c0ac1264b393d61b31f07080db7a5|#]][[https://www.youtube.com/watch?v=FFTnx7_rTg0|#]] * 암울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독재자 [[장 베델 보카사]]와 유사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